한나라당이 22일 미디어법을 강행 처리해 하반기 정국은 거센 후폭풍에 휩싸일 전망이다. 우선 여야 소통 단절로 ‘식물국회’ 장기화가 불가피하다. 민주당은 전면전을 예고한 터다. 당장 정세균 대표는 의원직 사퇴 결행을 선언했다. 민주당은 소속 의원 사퇴, 장외 집회 카드 등으로 결사항전 의지를 과시하며 대여 투쟁 강도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여진은 국회 밖으로 확산될 수 있다. 미디어법에 반대하는 일부 방송사와 시민단체의 반발과 저항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들과 민주당의 공조미디어법 전선이 확대되면 사회 전체가 논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다. 퇴로를 찾기 힘든 ‘미디어법 정국’이 개시되는 셈이다.

여권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떠안게 됐다. 여야 극한 대립에 따른 ‘정치 실종’의 책임론과 부작용은 집권세력에 클 수밖에 없다. 국회 마비는 정부의 정책 추진에 큰 걸림돌이다. 한시가 급한 비정규직법과 재래시장 육성 특별법 주요 민생법안 처리가 표류하면 비판여론의 타깃은 여권으로 향하게 된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강화론’ 구상이 흔들릴 위험도 있다. 국민 과반이 지지하지 않는 미디어법을 밀어붙인 것은 민심 무시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미디어법 반대세력을 넘어 중도층 거부감도 자극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이를 각오하고 강수를 택한 여당으로선 나름의 성과가 없지 않다. 장장 7개월을 끌었던 ‘MB표’ 핵심 법안을 마무리함으로써 무기력한 이미지를 벗고 결속을 다졌다는 점 등이다. 박근혜 전 대표의 ‘반대 투표’ 발언에 따른 적전분열 상황에서 그대로 주저앉았다면 후유증은 더 심각할 수 있다는 게 여권 내 공감대다.

여권은 앞으로 고강도 국정 드라이브를 걸어 국면을 전환하고 정국 주도권을 틀어쥘 계획이다. 청와대와 내각의 대폭 개편, 이 대통령의 8·15 경축사를 통한 국민통합 방안 제시 등 스케줄대로 당·정·청 쇄신을 단행한다는 복안이다. 이에 따라 여권 개편 일정이 당겨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청와대 핵심 참모는 “논란 증폭을 차단하기 위해선 판을 빨리 바꿔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쇄신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향후 정국의 향배는 여론의 흐름이 관건이다. 여야의 대국민 선전전이 치열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방송장악 음모’를 내건 야권의 투쟁이 호응을 얻지 못한다면 추동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 반대라면 여권은 위기에 처할 수 있다.

허범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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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이틀째를 맞고 있는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20일 저녁 당 보좌진들의 깜짝 응원을 받고 손가락으로 승리의 V자를 만들어 보이며 화답했다.

 

정 대표는 이날 국회 본청 내 당 대표실 바닥에 스티로폼깔고 농성을 벌이는 중이었고, 100여명의 보좌관들은 일부는 대표실 내부, 일부는 본청 바깥으로 몰려와 창문을 통해 “힘내세요”라고 외쳤다.

바깥에 서 있던 보좌관들은 촛불까지 받쳐 든 상태였고, 대표실 내의 보좌진들은 국회 사무처의 출입통제 결정에 따라 이틀째 퇴근을 하지 못해 다소 ‘꾀죄죄한’ 모습이 달랐다.

홍제표 기자 enter@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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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칸스어로 분리·격리를 뜻하는 아파르트헤이트. 인종차별, 아파르트헤이트와 관련해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은 씻지 못할 오명의 역사를 갖는다. 17세기 이후 이주한 백인이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비백인(非白人)을 차별해 온 억압, 멸시의 대명사 아파르트헤이트. 1948년 네덜란드계 백인 위주의 국민당 정부수립 후 공식제도로 시작돼 수많은 이들을 사지와 감옥으로 보냈다.

유색인종의 참정권을 막고 다른 인종간 혼인을 금지해 백인 특권 유지와 강화를 밀고갔던 아파르트헤이트. 이 불평등의 체제유지는 1976년 요하네스버그 주변 흑인집단거주지역 소웨토서 터진 폭동으로 큰 변화를 맞기 시작했다. 유색인종의 투쟁이 들불처럼 번졌고 1981년 헌법개정에 이어 10년전 인종차별 철폐의 헌법발효를 끌어냈다.

 

남아공에서의 인종차별 소멸엔 숱한 이들의 희생이 거름이 됐다. 넬슨 만델라는 가장 널리 알려진 일등공신. 인종차별에 맞서 탄압받던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회원을 7000명에서 10만명으로 늘려 놓았다는 인권변호사 출신이다. 44세때 종신형을 선고받아 27년을 감옥서 보내고 70대 초반 석방된 만델라는 노벨평화상을 받은 이듬해인 1994년 대통령이 됐다. 세상 사람들은 그해를 남아공에서 350년간의 인종차별이 종식된 해로 부른다.

 

얼마전 만델라의 91번째 생일, 남아공에선 전국적인 자선행사가 하루종일 있었다. 자신의 생일을 어려운 이웃에 봉사하는 ‘나눔의 날’로 해 달라는 만델라의 요청을 정부와 국민들이 받아들인 것이다. 대통령, 여야 의원, 고위공직자들이 불우노인 위문잔치며 거리청소에 나서는가 하면 노숙자들에게 담요를 건네는 등 나눔의 손길이 하루종일 이어졌다는데….

 

남아공 정부는 만델라의 생일을 우리 국경일 수준의 ‘만델라 데이’로 공식 지정했다고 한다. ‘갈라진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영웅’ ‘경제 인종차별을 가져온 위인’이란 엇갈린 평을 받는 만델라. ‘아프리카의 정치적 대부’로 불리는 그가 흑백화합과 인종차별 종식을 위해 변함없이 지켰던 통치철학은 ‘관용과 화해’였다고 한다. ‘만델라 데이’, 지정할 만하지 않을까. 그런데 우리는….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세상 일이 다 그렇고 그런 것이다." 미국 CBS 이브닝뉴스의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가 즐겨 쓴 클로징 멘트다. 어찌 보면 참 심심하고, 두루뭉실한 말이다. 냉소와 빈정거림, 무책임과 무소신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이 말을 그러나 미국 시청자들은 좋아했고, 그가 전하는 뉴스를 신뢰했다. 은퇴한 지 한참 후인 2006년 그는 자신의 멘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결과나 추후에 발생할 수 있는 논쟁에 상관없이 본 대로 사실을 보도한다는 기자의 가장 최고의 이상을 요약한 것"이라고. '그렇고 그런 것'은 냉소가 아니라 '사실'이라는 얘기다.

▦ '월터 삼촌'이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철저한 취재를 통한 사실 전달을 생명으로 하는 기자이기를 원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종군기자로 연합군과 함께 노르망디 '현장'에 상륙하기도 했다. 1962년 CBS 앵커가 된 후에도 미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다루면서 '주장'보다 '사실'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전달하려 애썼다. 그러면서 케네디 암살사건과 아폴로 달 착륙 때는 눈물과 탄성으로 국민들과 감정을 공유해 '미국에서 가장 신뢰 받는 남자'가 됐다. 사람들은 "대통령의 말은 못 믿어도 월터 크롱카이트의 말은 믿을 수 있다"고 했다.

▦신뢰의 원천은 정직이었다. 그에게 정직이 최고의 가치라고 가르쳐준 사람은, 일곱 살 때 한 아주머니가 흘린 동전을 주워 돌려주자 머리를 쓰다듬으며 "언젠가 너는 나라에서 가장 신뢰 받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말해준 어머니였다. 그 이후 그는 누구에게도, 단 한 번도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으며 자신이 무엇이 되어야 할지 알았다. 정직, 성실, 믿음, 프로정신을 앵커의 4가지 덕목으로 삼았고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의 공직 제의를 "솔직하고 직설적인 보도로 평판얻었는데 다른 것을 한다면 위선자가 되는 것"이라며 거절했다.

▦그가 18일 92세로 사망하자 미국의 신문과 방송은 '살아있는 전설'을 잃었다며 애도했다. NY포스트그를 '진정한 TV뉴스의 아버지'라고 평가했고, 숀 맥머너스 CBS사장은 "위기와 비극, 승리, 위대한 순간에 미국을 이끈 월터 크롱카이트 없는 CBS뉴스와 저널리즘은 상상도 할 없다"고까지 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미국이 아이콘을 잃었다"며 애도했다. 우리 방송도 언제쯤 사실을 함부로 과장하고 자신의 가치와 이념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것이 앵커의 권리와 멋인 양 착각하는 풍토에서 벗어나 이런 '살아있는 전설' 하나쯤 만들 수 있을까.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한 인간으로는 작은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1969년 7월20일 인류로서 달에 첫발을 디딘 우주 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남긴 말이다. 그의 말처럼 우주에 대한 인류의 집념은 달 착륙을 통해 실현됐다. 그러나 달을 둘러싼 우주개발은 미소 냉전구도의 산물이다. 1957년 러시아가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자 최강국 미국의 충격은 엄청났다.

 

미국은 연방예산 5%와 40만명의 인원을 달 착륙 프로젝트인 ‘아폴로 계획’에 쏟아부었다. 당시 미·소의 우주 개발은 체제 과시용의 성격이 컸다. 이때문에 냉전 종식과 함께 우주경쟁도 시들해졌다. 30년 가까이 정체된 우주개발은 21세기 들어서 다시 점화됐다. 제2라운드 ‘달탐사 경쟁’인 것이다. 우주과학 기술 확보는 국가안보와 직결된 국가생존 전략이다. 특히 달에는 지구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 희귀자원이 다량 존재하고 있다. 핵융합 원료인 헬륨3의 경우 30t이면 미국의 1년치 전력을 생산한다. 달에는 무려 100만t이 있다고 한다. 아시아 맹주를 다투는 중국과 일본이 새로이 가세했다.

 

중국은 2007년 10월 달탐사 위성인 ‘창어 1호’ 발사에 성공, 중화민족의 ‘천년 꿈’을 이뤄냈다. 2011년 우주도킹, 2014년 우주정거장 건설 등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중국에 질세라 일본 역시 2007년 달 탐사위성인 ‘가구야’를 쏘았고 2030년까지 유인 달기지 건설을 준비 중이다. 미국과 러시아 등 기존 우주 강국들도 새롭게 전열을 정비하는 중이다.

 

미국은 태양계 탐사와 2020년 달에 유인기지를 세우는 ‘우주탐사 비전’을 제시했다. 러시아와 유럽도 달을 포함, 태양계 행성을 운항하는 유인 우주 왕복선 개발에 한창이다.

 

한국 역시 우주강국의 꿈을 차근차근 현실화시키고 있다. 1992년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인 ‘우리별 1호’를 시작으로 이달 말 한국 최초 우주발사체 ‘나로호’ 발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 2020년 달 탐사 궤도선 개발과 2025년 달탐사 착륙선 개발 등 장기적인 우주 탐사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다. 우주를 지배하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